본문 바로가기
미술

[스크랩] 권영술展

by 삭소롬 2008. 11. 29.

Polrais-Journey just as river flows

권영술展 / KWONYOUNGSUL / 權暎述 / painting



권영술_Polrai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6×148.8cm_2008

강물처럼 흐르는 여정 ● (중략) 자기 예술의 감추어진 내적 보물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에 이르는 정신적인 피라밋을 세우는 선망의 공동작업인 것이다. (칸딘스키) ● 위대한 사색가들은 일찍부터 인간을 중간적 존재임을 말해 왔다. 과거와 미래의 중간에서 숨쉬는 인간, 감각에 얽매어 있으면서도 이를 벗어나 이데아로 향하려 하는 인간, 천사와 악마의 중간에 서 있는 인간, 숨는 것과 드러나는 것 사이에서 현혹되는 인간, 입에서 나오는 언어로 침묵을 말하려 하는 인간, 육안에 보이는 것과 심안(心眼)에 보이는 것 사이에 갈등하는 인간, 규칙과 자유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인간 등 그의 중간자적인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 이러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그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선 이 나그네는 '구름에 달 가듯이' 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존재이다. 움직이면서, 간혹 멈춘 순간에도 나그네는 무엇을 쉴 새 없이 본다. 그리고 느낀다. 그 체험은 그에게 희미한 또는 또렷한 기억으로 내면에 자리 잡고 켜켜이 쌓여 간다. 신기하게도 이들 기억은 화석처럼 죽어 있지 않고 살아서 꿈틀대며 오묘한 발효(醱酵) 작용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그네는 정지해 있지 않고 계속 물 흐르듯 어디론가 가는 존재이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긴긴 세월 속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느낌과 앞으로 또 끊임없이 이어져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엇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냥 이 시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만으로'(작가 노트) 느끼면서 말이다. (중략)




권영술_Polrai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2.5×148.8cm_2008


그는 스스로 말한다. '나는 사실(寫實)과 추상, 또는 구상과 비구상이라는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 느낌이 이끄는 대로 자연의 사실적 형태와 무관하지 않은 나 자신의 자율적인 형상(形象)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나간다'고. ● 여기서 발견되는 그의 조형 원리는 무위(無爲)적인 것으로 비친다. 사실과 추상의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집착하지 않는 듯한 무위가 그의 화면의 바탕에 깔려 있어 비너스상이 하나로 나타나기도 하고 군상으로 배열되기도 하며, 실루엣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질감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사실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무위성이 그가 말하는 바 '대상의 주체가 아닌 그냥 편안한 여행자(관람자, 제3자)의 입장이 되어 화면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원천일 것이다. 이 샘에서 물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 이 샘물의 흐름은 시간의 단절이 없다. 그리고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도 없다. 무위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인위(人爲)와 자연의 임계점(臨界點)은 씻겨 내려간다. (중략)




권영술_Polrai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2.7cm_2008


그런데 권영술의 무위(無爲)가 제3자적이고 편안하다해서 그것이 수동성이나 표현 부재, 또는 무기력으로 오해되는 것은 금물이다. 만약 그런 피상적인 인상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그의 화면을 깊이 꿰뚫어 볼 줄 모르는 경박함의 소치일 것이다. 반대로 권영술은 그의 화면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간절하고도 면밀하게 그려내려 한다. 지표(地表)는 사람이 발로 밟기에 알맞은 온도이지만 그 밑에는 바위를 녹이는 온도의 마그마가 존재한다. 권영술의 화면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암한과 무위성은 지표와 같은 것이다. 그는 적어도 겉으로는 덤덤하다. 사람됨이 그러한 것처럼. 그러나 그의 내면세계는 땅 속 깊은 곳에서 높은 온도로 끓으면서도 지표를 떠받쳐주고 있는 마그마와 같은 존재이다. 마그마의 무정형성(無定形性)은 권영술에게 표현의 욕구를 분출하는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할 뿐, 조형의 기법적인 몫은 전적으로 그에게 맡긴다.




권영술_Polrai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08


권영술은 여기서 자기 예술의 자율적인 형상 언어를 확보한다. 자의적인 형(形)과 색(色)으로 자신의 마그마를 분출하는 것이다. 그는 이 분출 과정을 유별나게 그리고 자극적인 방법으로 행하지 않는다. 이미 말한 대로 덤덤하고 자유롭게 물 흐르듯이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방식대로 내적인 회화적 악보(樂譜)를 형성한다. 때로는 화음을 방출하고, 때로는 무조(無調)적으로 선율을 흘리기도 한다. 결국 사물을 내면세계에 받아들이는 과정 뿐 아니라, 내면세계를 분출하는 조형의 과정에서도 그는 시종일관 나그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나그네로서의 권영술이 남기는 조형의 궤적은 이처럼 무위성(無爲性)과 능위성(能爲性) 사이에 위치하며 여기서 표면적으로 상호 연관성의 부재처럼 보이는 그의 화면은 칸딘스키의 말처럼 사실상 그의 내적인 현존(現存)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 나그네의 행로는 내적인 보물을 찾아 깊이 가라앉기도 하고 반대로 새처럼 높이 비상(飛翔)하기도 한다. 천국에 이르는 피라미드처럼 말이다.




권영술_Polrai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08


최근작인 「시간여행」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느낌을 다양한 재료와 부조적 마티에르에 비중을 두고서 아득한 선사시대로부터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먼 미지의 세계로 까지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각하고 꿈꾸는 현시점에서의 상황을 표현'이 나그네가 지금 어느 위치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의미만이 아니라 이 나그네의 그림을 보는 이가 드디어 행로를 같이 하기 시작했음의 의미가 있음을 직감케 한다. 이제 이 나그네의 행로는 우리와 함께 강물처럼 흐르는 여정이요, 천국으로 향하는 순례인 것으로 기대해도 좋으리라. ■ 박낙규

출처 : 권영술展
글쓴이 : 푸른등대 원글보기
메모 :